2010년, 서울 청계천에 있던 마차를 기억하세요?

2010년, 서울 청계천에 있던 마차를 기억하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 746] 210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오색의 린>영화에 대해 생각한다. 이 시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OTT 서비스가 지구 반대편에서 갓 만들어진 영화를 안방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도록 하는 세상에서, 극장까지 나와 값을 치르고 봐야 하는 영화가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다. 극장까지 걸음하는 것부터, 다른 이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하여 에티켓을 감내하는 것까지가 모두 그렇다. 휴대폰을 켜지 않고, 옆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며, 누구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일을 굳이 하지 않는 것이 모두 극장의 에티켓이 된다. 갈수록 엄격해지는 에티켓은 한 때는 자연스러웠던 소란스럽고 자유롭던 극장을 고요하고 엄숙한 공간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건 과연 자연스런 일이었나.
 
그럼에 극장 상영이 지닌 무시할 수 없는 특징은 이것이다. 극장을 찾는 관객은 적어도 러닝타임 동안 작품을 일방적으로 감상하게 된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은 관객은 스크린 위에 뜬 영상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성을, 그로부터 빚어지는 이야기와 메시지에 온 정신을 기울인다. 적어도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은 한다.
 
온갖 콘텐츠가 범람하고, 그 많은 콘텐츠를 주체적으로 켜고 끄고 떠나기 일쑤인 세상에서 극장 상영관만큼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수용자의 관심을 잡아두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감독이란 관객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마땅하다.
 ▲ 오색의 린 스틸컷ⓒ 이원우
 
서울 도심 마차로부터 출발한 영화
 
<오색의 린>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210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얼마 전 막 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바 있는데, 이를 다시 독립영화를 즐기는 관객 앞에 선보였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가 이 시대 관객들에게 공명하리란 믿음이 이 작품을 초청한 이들에게는 있었으리라고 여긴다.
 
영화는 2010년 어느 날, 서울 도심 청계천 마차를 비춘다. 지금은 그를 본 이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흐릿해졌지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 복판에는 말이 끄는 관광마차가 버젓이 있었다. 고프로라 불리는 고성능 액션캠을 처음 산 감독 이원우는 테스트촬영차 길을 나선다. 마차나 말을 찍겠다는 분명한 계획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마차를 맞닥뜨린 순간, 도시와 마차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눈앞에 마주하고 그녀는 이를 제 카메라에 담아낼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마차에 매인 말은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도심 도로 위에 똥과 오줌을 싸버리면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차는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어엿한 교통수단이지만 사실상 도로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한때는 당연했을 그 무절제한 배설을 오늘날 도시민은 용납할 인내심이 없다. 그 결과로써 말에게는 먹고 마실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 말은 언제 먹고 마시냐'는 감독의 물음에 마차를 끄는 이는 집에 가서 마신다고 답할 뿐이다. 금토일 사흘을 꼬박 새고 남양주까지 마차를 끌고 돌아간 뒤에야 먹고 마실 수 있는 말의 삶, <오색의 린>이란 작품의 출발이 바로 이 순간 이뤄진다.
 
영화는 그로부터 말에 대한 온갖 이야기, 또 말로부터 뻗어져 나올 수 있는 온갖 담론의 가능성을 짚어보기 시작한다. 사람의 시선인지 말의 시선인지 알 수 없는 초점 없이 흔들리는 영상 위에 감독이 직접 녹음한 내레이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는 물음을 관객 앞에 내던지듯 풀어놓는다.
 
동물학대 논란 끝에 청계천에서 마차가 사라진 자리엔 자율버스가 선다. 말이 밀려난 도로 위에 인간 운전사까지 사라진다. 말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듯, 운전사의 양해 또한 구하지 않았으리란 감독의 말이 그 자연스런 귀결에도 제법 오래 귓가에 맴돈다.
 ▲ 오색의 린 스틸컷ⓒ 이원우
 
말로부터 기린까지, 이 감독의 상상
 
감독은 말이 전쟁과 정복, 독립의 상징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를 탄 인간을 위대하게 보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남북전쟁 당시 미국 남부군 지휘자였던 어느 장군의 동상을 비추고, 그 동상이 마침내 끌어내려지는 역사를 담아낸다. 다시 영화는 말을 탄 여성이 얼마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역사 속 말 탄 여성들, 대다수는 기생이며 예외적인 독립군이며 의사, 상인의 이야기를 더한다. 독립운동가 안영희와 김명시, 동학군 장수 이소선, 최초의 현대적 여의사로 알려진 김점동, 제주 상인 김만덕까지가 하나하나 열거된다.
 
영화는 인간에 의해 그 쓰임이 정해지고, 제 수명만큼 살지 못하기 일쑤인 말의 연대기에도 주목한다. 한국에 얼마 없는 줄 알았던 말이 실은 수만 마리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마장과 승마장, 각종 말 농장 등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비춘다. 또 경마대회 주기에 맞춰 태어나고 훈련되는 모습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묻고, 그 짧은 수명을 다한 뒤 도축돼 말고기로 팔려나가는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청계천 마차에 매인 말 깜상으로부터 수많은 잘나가는 경주마, 잘 나가지 못하는 경주마, 경주마조차 되지 못한 말들과 승마장에서 사람을 태우는 말들, 다시 도축되는 말이며 생츄어리에서 여생을 보내는 말까지 다양한 말들의 운명을 생각한다. 인사동 도심의 경찰기마대와 미국 기마대의 모습을 비추고, 그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효과적 수단이란 사실을, 다시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 급기야는 미국의 곰과 한국의 사슴으로까지 그야말로 자유로이 가지를 뻗쳐 나간다.
 
말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일까. 감독은 신수 기린을 영화 가운데 중요하게 퍼올린다. 동서남북 사방의 중앙을 지키며 천하 모든 짐승의 영수로 만물을 다스린다는 기린이다. 영화는 <숫타니파타>가 무소며 사자 등에 붙인 저 유명한 글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을 빌려와 기린의 자유로움을 말의 자유롭지 못한 현재와 붙이려 든다.
 ▲ 오색의 린 스틸컷ⓒ 이원우
 
영화가 다다르지 못한 아쉬운 지점들
 
<오색의 린>이 탁월하거나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질문과 초점 없이 산만한 영상이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함으로 다가온다. 말의 생애주기를 살피고 동물권을 돌아볼 줄 알았던 영화는 마치 대학생 조별과제 자료조사처럼 말과 관련한 온갖 사항을 한 데 늘어놓는 식으로 발전해나간다. 강릉 단오제부터 세계의 말 탄 인물들, 여성과 장애인, 기린과 여타 야생동물까지 뻗쳐나간 단상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고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은 당혹스러움을 낳을 밖에 없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영화가 자연스레 거칠 수 있었을 몇 가지 주요한 지점을 거의 돌아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작은 말이 오늘의 큰 말로 진화했다는 한 줄 글로부터 말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살펴볼 수 있었을 테다. 전쟁을 위한 필수적 도구로써, 오랜 기간 문화권을 넘어 낮은 계급의 인간보다 훨씬 귀한 대접을 받은 귀한 자산으로써 말을 살피는 일도 가능했을 테다.

일찌감치 가축화되어 인간과 공존하는 형태로 생존하였고 진화했으며 번성한 말이 자연상태의 야생동물이 수없이 겪어온 멸종에의 위기를 얼마 마주하지 않은 점도 깊이 따져볼 만하다. 적어도 종의 존속 측면에서 말은 가축화를 통하여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번영을 누렸고 여전히 누리고 있다. 이는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서가 될 수 있었을 테다.
 
그렇다면 자연히 가축화 된 동물이 야생동물과 어떻게 다른가를, 오늘날 인간이 가축이며 야생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과연 윤리적인가를 보다 본격적이며 깊이 있게 질문해볼 수 있었을 테다. 어째서 야생동물 생츄어리가 단 한 곳도 없는 나라가 말 생츄어리를 가질 수 있는지를, 말의 가축화는 과연 종의 선택이었는지를 따져볼 수도 있었겠다. 말이 없었다면 거두지 못하였을 전투의 승패들과, 그와 연결된 한국이며 다른 나라들의 운명들을 따라가 보는 건 어땠을까. 그러나 영화는 그중 어느 길도 진중하게 걷지 않는다.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오색의 린>의 손을 잡고 부유한 시간은 말과 기린, 가축과 야생동물, 여성과 장애인, 그밖에 온갖 논의를 하나도 진전시키지 못한 채 그저 소모되고 만다. 80분을 견디며 영화를 본 나는 이로부터 그만한 의미며 재미를 찾아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배려 없는 영상과 회수되지 않는 질문들 사이로 보는 이를 잡아채어 함께 고민토록 하는 지점이 단 하나쯤은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장편 다큐로서의 책임이 아닐까를 묻고 싶다.
 ▲ 오색의 린 제210회 한국독립영화쇼케이스 뒤 이원우 감독(왼쪽)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정답 없는 호기심의 전개, 그대로도 괜찮다고
 
그러나 영화의 매력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다른 누가 발견하기도 한다는 점에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오색의 린>을 감상한 이 몇에게 물은 끝에 나는 이 작품의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오류시장>을 찍은 다큐멘터리 감독 최종호가 바로 그다.
 
최종호는 "독립영화는 영화산업의 보편적인 제작체계를 따르기 어려운 환경에 있기도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와는 다른 대안적인 제작방식을 모색하는 것에 그 존재 의의가 있기도 하다"며 "더 경량화되고 대중친화적이 되어가는 현대 카메라의 특질을 활용하여 일상의 작은 구석의 이미지들을 길어 올리는, 혹은 무엇이든 최대한 작은 느낌으로 길어 올리는, 그럼으로써 보는이도 '내가 매일 만나는 일상 속에는 어떤 구석, 조각들이 있었지?'하고 상상해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야기 전개나 장면의 스펙터클에 빠져들게 하는, 정답이 있는 몽타주는 이원우 감독의 목표가 아닌 것 같다"면서 "작자의 메시지에 확 빠져들게 하기 보다는 작자가 세상을 바라보며 한 생각들의 전개와 상상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매끄럽지 않은 카메라 워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집도 그런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고 해석한 최 감독은 "저 또한 전통적인 서사성에 더 익숙한 사람이라 관람 당시 감동보단 낯설단 생각이 강했는데, 오히려 문득문득 여러 생각이 떠오른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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