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 불교 부수고 수행 불교 회복해야”...영화 ‘깨진바루’, 한국 불교 날 선 고발

“기복 불교 부수고 수행 불교 회복해야”...영화 ‘깨진바루’, 한국 불교 날 선 고발

영화 ‘깨진바루’. 사진 | 김행수 감독
[스포츠서울 | 강동현 기자] 오는 15일(음력 4월 8일)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중생 곁으로 온 지 2568년이 되는 해다. 이맘때 절집은 봉축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간다.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천지에 비쳐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 또한 밝아지기를 염원하며 온 도시를 연등으로 밝힌다. 모두에게 괴로움은 사라지고 밝고 행복한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수행자의 마음이고 스님의 마음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느 절집은 연등을 준비하는데, 어느 절집은 목불인견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출가 수행자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절집 담장을 넘어 속인들 귀에까지 들어온다. 총만 안 들었지 조직폭력배를 능가하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스님들의 말투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부처님 오신 날 스님들은 대중과 함께 연등의 참뜻을 새기며, 이타적 마음으로 수행 불교의 모습을 대중에게 실천하고 있는지, 불교를 걱정하는 대중의 원성을 외면하고는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되레 대중이 스님을 걱정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불교 대중은 한국 불교가 망했다며 걱정한다. 망한 이유는 명확하고 간단하다. 빠라지까(pārājika 부처님 율법인 바라이죄) 율법을 범하면 즉시 절집을 떠나야 하며 이생에 다시는 승려가 될 수 없는데도, 아무런 죄의식이나 수행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버젓이 가사 장삼을 걸친 채 큰 스님이라 불리길 요구하며, 자신은 부처의 법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대중을 기만하는 것은, 이미 자정력이 고장 났고, 빠라지까 율법은 사문화됐고, 고타마 싯다르타의 불교는 사라졌으며, 절집이 복(福) 장사하는 곳이 됐다는 의미다.

고려는 타락한 불교 때문에 망했다. 태고 보우국사가 망해 가는 고려 불교를 구하기 위해 구산선문을 통합했듯이, 기복(祈福) 불교로 변질된 한국 불교를 누군가는 통합된 수행 불교로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 2000년을 이어 온 한국 불교 후손들의 역할이다.

2013년 8월 불교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지난 9일 개봉한 ‘깨진바루’는 한국 불교 개혁을 위한 고발 영화다.

정법불교신문 강상태 기자(김강일 분)의 정신적 스승인 묵계 스님은 불교 개혁을 요구하다 폭력 승려들에게 무자비한 집단 폭행을 당하고 불구가 된 채 행방불명된다. 스승을 폭행 사주한 자가 불교계 최고 권력자 광불 스님(윤승원 분)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광불 스님을 납치 감금해 불교 정화를 요구하며 복수의 괴물이 되어 간다.

‘깨진바루’ 김행수 감독은 “혼 빠진 한국 불교 정수리를 깨울 산중 어른의 좌방은 비어 있고, 법을 인가받을 수좌는 전설이 됐고, 절벽 끝으로 걸어간 수행자의 안장(眼藏)에서 뿜어지던 법의 광명 또한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불가의 옷을 입은 승려들이 세(勢)를 이뤄 시줏돈으로 사치하고, 시줏돈으로 은처(隱妻)를 두고, 시줏돈으로 도박하는 일이 연일 뉴스가 되지만, 그들을 정화할 기능이 불교계 어디에도 작동하지 않는다. 절집에서 말 좀 배웠다는 언행 다른 승려들이 부처의 말을 팔아 먹고살기 위해, 대중을 눈가림하고, 돈 화탕(火湯) 속으로 뛰어드는 하루살이 같은 이 저급한 불교 현실이 비통하고 절망스럽다 한다. 삭발은 왜 하고 불가의 옷은 왜 입었는가?

불교의 가치는 자기 성찰을 통한 수행에 있다. 기복 불교를 부수고 수행 불교를 회복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승려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것이 영화 ‘깨진바루’를 만든 이유다. dhk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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