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대영 광주동구인문학당 디렉터▲ 2022년 11월 23일~2023년 6월 18일까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된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지난 2022년 11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기획전시 '원초적 비디오 본색'은 개관 이후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최대 흥행 전시로 각광을 받았다. 1980년대~1990년대를 풍미하다 밀려난 비디오테이프가 20년 만에 주인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장년 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1990년대 이후 태어난 MZ 세대에게는 수십 년 전의 '유물'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국에서 비디오를 보기 위해 광주로 찾아온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겼고, 3개월로 예정했던 전시회는 연장돼 2023년 6월에야 막을 내렸다(관련기사 : 불법 뛰어넘어 한국 영화 성장 '발판' 된 비디오테이프 https://omn.kr/22moe).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전시회가 마무리된 이후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전시회 종료를 앞두고 이대로 다시 창고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역 영화계의 움직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행정적인 차원에서 고민이나 배려는 없다 보니, 화려하게 조명받던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오래오래 빛을 보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기를 바랐던 비디오테이프 소유자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화제의 전시 그 후 1년. 지난 6월 29일 광주에서 비디오테이프 수집자인 조대영 동구인문학당 디렉터를 만났다. 1990년대 광주 시네마테크 운동을 개척했던 조대영 디렉터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전시 끝나고 150박스(박스당 140개) 포장해 다시 창고에 들여놨습니다. 지역언론에서 릴레이 기고가 이어지면서 관심들이 생기기를 기대했으나, 광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영화도 볼 수 있는 재밌는 도서관 마련됐으면"
조대영 디렉터는 광주 영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91년 만든 영화동아리 굿펠라스는 1990년대 광주 시네마테크 운동의 출발이었다. 보는 영화에서 찍는 영화로 성장하기 위해 워크숍을 90년대 내내 열기도 했고, 그 활동을 인정받아 2000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영상 큐레이터를 담당했다.
생계를 위해 '보물섬'이라는 비디오 판매점도 운영하면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광주독립영화협회, 광주독립영화제 등의 출발에 빠짐없이 함께했다. 30년 넘게 광주영화 지킴이를 자임하는 중이다. 그의 영화 인생, 더 나아가 광주영화를 상징하는 게 수만 점의 비디오였다.
▲ 조대영 광주동구인문학당 디렉터ⓒ 성하훈
-전시회가 끝나고 비디오가 지하창고로 들어갔는데, 비디오 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은데요.
"지하실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습기가 차는 것을 감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에) 비디오테이프를 보관하면서 가장 중점둔 부분은 재생해서 볼 수 있는 용도로 모아놓았다기 보다는 비디오 그 자체 물성을 보관한다고 보는 게 맞아요. 그래서 비디오테이프 자체만은 멀쩡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사수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외에 책도 있지 않나요?
"보유 도서가 7만 권 정도 됩니다."
-책과 비디오만으로 작은 도서관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민들의 문화 자원을 모아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광주가) 인문도시로 자료관도 필요하지요.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아직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유물이 되어 가는 자료를 보관하고 활용하기에는 도서관이 이상적이다. 조대영 디렉터도 공감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도서관은 조금은 사람들한테 재미가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개성 있고 재밌는 도서관이 있을 수는 있겠는데 찾아야 할 것 같고. 제가 해보려고 하는 모델은 재미없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서관, 놀이터 같은 공간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내놓고 함께 누리는 방식으로요."
-영화 도서관처럼 영화와 관련된 자료를 집중해서 모아놓는 식으로요?
"그렇죠. 그러니까 영화도 그곳에 가면 만날 수가 있죠. 영화 책을 포함해서 비디오 DVD 그다음에 파일로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있는 거죠. 그 외에 소설, 사진 이런 게 있죠. 도서관 가면 베스트셀러 위주로 해 놓는 게 오랫동안 이어져 왔잖아요. 각각의 전문 분야 자료들이 그곳에 집적돼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새로운 걸 추가한다면 멋있는 공간이 될거라고 보거든요. 도서관의 한계를 극복하는거죠."
-지금 동구 인문학당에서 하는 일도 그런 일인가요?
"맞습니다. 인문학당 프로그램 기획자로 제가 일을 하고 있고요. 제가 1년에 한 세 차례 정도 도서제를 준비해서 하고, 영화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제가 2주에 한 번씩 영화 인문학 극장을 진행해요. 소설 영화학 개론이라고 해서 원작 소설을 2주간에 걸쳐서 읽고 와요. 그리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보고 상영 후 소설도 이야기하고 영화도 이야기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며칠 뒤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 오라고 했고요. 그날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보고 나서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
"한국영화 화양연화 가능케 한 비디오테이프"
광주 지역 문화계 인사들은 광주의 영화를 상징하는 조대영 디렉터의 자료들을 어떤 식으로든 보존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중에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러나 행정이 움직여야 현실성이 생긴다. 예향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나, 광주가 안고 가기에는 열의가 부족해 보인다. 전시회 이후 성과를 이어가지 못하는 행정에 대해 지역 영화인들도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조대영 디렉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보자고 하는 모델은 있는데, 합의를 도출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놓고 싶지 않은데, 쉽지도 않습니다. 광주광역시 문화산업 담당 직원분들이 몇 번 찾아오시기는 했습니다. 언론에 '조대영이라는 사람이 평생동안 모은 이 문화유산 자산들을 이렇게 내놓는다는데 시에서는 이거 어떻게 할 거냐?' 기사가 실리면 와요. 시청에서는 저를 달래러 오는 거죠. 그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1990년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는데 후회는 안 되세요? 비디오와 책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잖아요.
"저는 후회는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또 제가 이만큼이라도 해서 희망적인 어떤 움직임이 보였기에 보람을 느끼죠. 솔직한 말로 그때만 해도 누가 알아주기를 했나요. 돈이 나왔나요. 전부 제 호주머니 털어서 많은 일을 했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광주에서 영화 찍는다고 하면 제작 지원금을 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영화제 하면 시로부터 지원받잖아요. 그전에는 하나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경력이 되고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지요. 지원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죠."
▲ 조대영 광주 동구인문학당 디렉터ⓒ 성하훈
조대영 디렉터의 비디오테이프는 영화학계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시네필의 시대: 한국 영화문화에서 비디오필리아와 시네필리아>의 저자 이선주 부산대 교수는 "한국 시네필 문화나 영화운동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나 주변부의 역사로 밀려나 있는 것이 바로 1980년대-1990년대 비디오 문화"라며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를 가능하게 한 영화 문화는 서구에서처럼 '필름'과 '극장'에 기반한 시네마테크 문화가 아닌 '파편적 비디오 문화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대영이 이끈 '굿펠라스'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개인들의 열정으로 운영된 비디오테크 활동은 서구에서는 국가 기관 및 공공 영역에서 하던 일을 '대안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비디오테이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다져진 한국영화에 대한 토대를 바탕으로 최근 국내외적으로 1980년대~199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보며 변방에서 중심으로 향했던 영화운동은 외국영화에 늘 열세이던 한국영화의 체질을 바꿔놨다. 조대영 디렉터의 비디오테이프도 여기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한국영화의 유산과 같은 비디오테이프 보존에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자료들이 광주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광주 영화역사가 담긴 만큼 어떻게든 광주 안에 남기고 싶습니다."
광주영화의 선구자 조대영 디렉터의 간곡한 소망이었다.
지난 2022년 11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기획전시 '원초적 비디오 본색'은 개관 이후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최대 흥행 전시로 각광을 받았다. 1980년대~1990년대를 풍미하다 밀려난 비디오테이프가 20년 만에 주인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장년 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1990년대 이후 태어난 MZ 세대에게는 수십 년 전의 '유물'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국에서 비디오를 보기 위해 광주로 찾아온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겼고, 3개월로 예정했던 전시회는 연장돼 2023년 6월에야 막을 내렸다(관련기사 : 불법 뛰어넘어 한국 영화 성장 '발판' 된 비디오테이프 https://omn.kr/22moe).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전시회가 마무리된 이후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전시회 종료를 앞두고 이대로 다시 창고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역 영화계의 움직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행정적인 차원에서 고민이나 배려는 없다 보니, 화려하게 조명받던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오래오래 빛을 보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기를 바랐던 비디오테이프 소유자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화제의 전시 그 후 1년. 지난 6월 29일 광주에서 비디오테이프 수집자인 조대영 동구인문학당 디렉터를 만났다. 1990년대 광주 시네마테크 운동을 개척했던 조대영 디렉터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전시 끝나고 150박스(박스당 140개) 포장해 다시 창고에 들여놨습니다. 지역언론에서 릴레이 기고가 이어지면서 관심들이 생기기를 기대했으나, 광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영화도 볼 수 있는 재밌는 도서관 마련됐으면"
조대영 디렉터는 광주 영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91년 만든 영화동아리 굿펠라스는 1990년대 광주 시네마테크 운동의 출발이었다. 보는 영화에서 찍는 영화로 성장하기 위해 워크숍을 90년대 내내 열기도 했고, 그 활동을 인정받아 2000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영상 큐레이터를 담당했다.
생계를 위해 '보물섬'이라는 비디오 판매점도 운영하면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광주독립영화협회, 광주독립영화제 등의 출발에 빠짐없이 함께했다. 30년 넘게 광주영화 지킴이를 자임하는 중이다. 그의 영화 인생, 더 나아가 광주영화를 상징하는 게 수만 점의 비디오였다.
▲ 조대영 광주동구인문학당 디렉터ⓒ 성하훈
-전시회가 끝나고 비디오가 지하창고로 들어갔는데, 비디오 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은데요.
"지하실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습기가 차는 것을 감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에) 비디오테이프를 보관하면서 가장 중점둔 부분은 재생해서 볼 수 있는 용도로 모아놓았다기 보다는 비디오 그 자체 물성을 보관한다고 보는 게 맞아요. 그래서 비디오테이프 자체만은 멀쩡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사수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외에 책도 있지 않나요?
"보유 도서가 7만 권 정도 됩니다."
-책과 비디오만으로 작은 도서관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민들의 문화 자원을 모아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광주가) 인문도시로 자료관도 필요하지요.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아직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유물이 되어 가는 자료를 보관하고 활용하기에는 도서관이 이상적이다. 조대영 디렉터도 공감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도서관은 조금은 사람들한테 재미가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개성 있고 재밌는 도서관이 있을 수는 있겠는데 찾아야 할 것 같고. 제가 해보려고 하는 모델은 재미없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서관, 놀이터 같은 공간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내놓고 함께 누리는 방식으로요."
-영화 도서관처럼 영화와 관련된 자료를 집중해서 모아놓는 식으로요?
"그렇죠. 그러니까 영화도 그곳에 가면 만날 수가 있죠. 영화 책을 포함해서 비디오 DVD 그다음에 파일로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있는 거죠. 그 외에 소설, 사진 이런 게 있죠. 도서관 가면 베스트셀러 위주로 해 놓는 게 오랫동안 이어져 왔잖아요. 각각의 전문 분야 자료들이 그곳에 집적돼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새로운 걸 추가한다면 멋있는 공간이 될거라고 보거든요. 도서관의 한계를 극복하는거죠."
-지금 동구 인문학당에서 하는 일도 그런 일인가요?
"맞습니다. 인문학당 프로그램 기획자로 제가 일을 하고 있고요. 제가 1년에 한 세 차례 정도 도서제를 준비해서 하고, 영화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제가 2주에 한 번씩 영화 인문학 극장을 진행해요. 소설 영화학 개론이라고 해서 원작 소설을 2주간에 걸쳐서 읽고 와요. 그리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보고 상영 후 소설도 이야기하고 영화도 이야기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며칠 뒤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 오라고 했고요. 그날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보고 나서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
"한국영화 화양연화 가능케 한 비디오테이프"
광주 지역 문화계 인사들은 광주의 영화를 상징하는 조대영 디렉터의 자료들을 어떤 식으로든 보존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중에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러나 행정이 움직여야 현실성이 생긴다. 예향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나, 광주가 안고 가기에는 열의가 부족해 보인다. 전시회 이후 성과를 이어가지 못하는 행정에 대해 지역 영화인들도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조대영 디렉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보자고 하는 모델은 있는데, 합의를 도출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놓고 싶지 않은데, 쉽지도 않습니다. 광주광역시 문화산업 담당 직원분들이 몇 번 찾아오시기는 했습니다. 언론에 '조대영이라는 사람이 평생동안 모은 이 문화유산 자산들을 이렇게 내놓는다는데 시에서는 이거 어떻게 할 거냐?' 기사가 실리면 와요. 시청에서는 저를 달래러 오는 거죠. 그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1990년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는데 후회는 안 되세요? 비디오와 책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잖아요.
"저는 후회는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또 제가 이만큼이라도 해서 희망적인 어떤 움직임이 보였기에 보람을 느끼죠. 솔직한 말로 그때만 해도 누가 알아주기를 했나요. 돈이 나왔나요. 전부 제 호주머니 털어서 많은 일을 했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광주에서 영화 찍는다고 하면 제작 지원금을 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영화제 하면 시로부터 지원받잖아요. 그전에는 하나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경력이 되고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지요. 지원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죠."
▲ 조대영 광주 동구인문학당 디렉터ⓒ 성하훈
조대영 디렉터의 비디오테이프는 영화학계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시네필의 시대: 한국 영화문화에서 비디오필리아와 시네필리아>의 저자 이선주 부산대 교수는 "한국 시네필 문화나 영화운동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나 주변부의 역사로 밀려나 있는 것이 바로 1980년대-1990년대 비디오 문화"라며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를 가능하게 한 영화 문화는 서구에서처럼 '필름'과 '극장'에 기반한 시네마테크 문화가 아닌 '파편적 비디오 문화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대영이 이끈 '굿펠라스'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개인들의 열정으로 운영된 비디오테크 활동은 서구에서는 국가 기관 및 공공 영역에서 하던 일을 '대안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비디오테이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다져진 한국영화에 대한 토대를 바탕으로 최근 국내외적으로 1980년대~199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보며 변방에서 중심으로 향했던 영화운동은 외국영화에 늘 열세이던 한국영화의 체질을 바꿔놨다. 조대영 디렉터의 비디오테이프도 여기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한국영화의 유산과 같은 비디오테이프 보존에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자료들이 광주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광주 영화역사가 담긴 만큼 어떻게든 광주 안에 남기고 싶습니다."
광주영화의 선구자 조대영 디렉터의 간곡한 소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