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클로징] 능력주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홍기빈의 클로징] 능력주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이미 1958년에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가 어떤 디스토피아로 이어질 것인지를 절절히 경고했다. 부와 권력과 명예 등 사람들이 원하는 것의 분배가 철저히 각 개인이 가진 ‘능력’에 비례하여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이다. ‘공정한’ 사회일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행복한 사회는 아닐 것이다. 이제부터 ‘없는 자들’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어서 서러운 것에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꼴로 사는 책임은 모조리 자신이 못난 탓이라는 모욕까지 뒤집어쓰게 되기 때문이다. 게임과 경쟁에서 밀렸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불만이 쌓여간다. 마이클 영의 이야기는 결국 이 ‘없는 자들’의 폭동으로 사회가 무너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오래전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술집 지하 화장실에서 본 맥주 광고 포스터는 아직도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문구는 ‘맥주의 미덕: 못생긴 사람들도 섹스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였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직면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일상의 분명한 쓰디쓴 현실에다가 엄청난 양의 자조와 해학의 설탕을 버무려 썩은 미소를 강제로 뽑아내는 명문장이었다. 성적 매력을 가진 이들은 사실 소수에 불과하다. 그저 그런 얼굴에다 배 나오고 펑퍼짐한 대다수의 우리 사회 전체에서 성적 쾌락을 분배받을 수 있는 ‘능력’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미남미녀로 줄 세워 짝짓기라는 단순무식한 서열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문명과 문화는 인간의 성적 행위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와 감각과 정서가 개입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으며, ‘욕망’과는 구별되는 ‘사랑’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꼭 미남미녀가 아니라고 해도. 서로 마음이 통한다면, 서로 믿는다면, 서로가 그냥 좋다면, 그 밖의 무수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끌리게 됐다.

나도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들이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섬세하며 사려 깊게 그 ‘능력’을 인정하고 있느냐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으며, 내게는 너무나 부러운 ‘능력’이다.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않으며 튈 만한 재주는 없어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오늘도 제자리에서 몇십년째 묵묵히 불평 없이 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있다. 이 또한 너무나 부러운 ‘능력’이다. 심각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우울증은커녕 그저 감자탕에 소주 한잔으로 다 날려버리고 허허 웃을 수 있는 삶의 도인들이 무수히 많다. 엄청난 ‘능력’이다. 이 모든 ‘능력’들이 합쳐지고 서로를 보완할 때 인간 세상은 제대로 굴러간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의 종류는 너무나 적고 너무나 협소하다. 내가 능력주의라는 이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그 좁은 문에서 비켜나 있는 압도적인 숫자의 사람들은 그 소중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능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내게는 능력주의 사회라는 것이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외모가 뛰어나고, 집에 끗발이 있는 소수의 아이들끼리 뭉쳐서 ‘일진’을 구성하여 급우들 위에 깡패처럼 군림하는 학급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능력주의를 사회의 이상으로 내세우려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무수히 다양한 ‘능력’을 풍부하고 섬세하고 다양하게 인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외모가 별 볼 일 없어도 맥주에 취하지 않아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로 이 세상은 오늘 밤도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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