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조윤선 임명, 이 영화가 떠오른 까닭

오세훈의 조윤선 임명, 이 영화가 떠오른 까닭

[김성호의 씨네만세 878] 블랙리스트 면죄부 준 오세훈과 <트럼보>비극이다. 역사가 진보하리라는 믿음이 판판이 깨어지고 있다. 인간을 오늘의 인간이게 한 것이 무엇인가. 어제의 과오를 개선하고 학습하여 다시는 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절망의 언덕에서 희망을 구하는 법이 그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8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서울시향 비상임이사로 위촉했다는 소식이다. 조윤선이 누구인가. 박근혜 정권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리스트를 작성해 지원에서 배제토록 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동자가 아닌가. 이로 인하여 법원은 조 전 장관에게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가려 지원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에 대해서도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며 특별사면으로 복권되기도 했다.

정권 입맛에 맞으면 지원을 하고 눈 밖에 나면 숨줄을 끊는 저열한 시대를 한국사회가 지나왔다. 그저 지원에서 배제한 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명단에 오른 이를 기용한 작품은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고, 영화와 연극, 소설을 포함한 각종 예술작품이 제작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진보적 활동을 이어온 예술가 개개인의 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개인사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 트럼보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블랙리스트 면죄부? 그 고통을 잊었나

블랙리스트 가운데 이창동과 봉준호, 한강과 같은 이들이 올라 있었단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이 정권 뒤 칸영화제 역대 최고 평점을 받은 작품을 만들고, 황금종려상이며 오스카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의 쾌거까지 이룩한 건 민망하기까지 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을 이와 같은 치졸한 정책이 훼손할 뻔 한 게 아닌가. 아니, 어쩌면 이름 모를 수많은 작가와 감독, 배우들에게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혔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몰상식한 결정은 935만 명에 이르는 서울시민, 나아가 블랙리스트가 낳은 폐해를 함께 겪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5175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위다. 자유주의며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 나라에서 정권과 다른 입장을 개진했다 하여 공권력을 동원해 밥그릇마저 박살내려 한 블랙리스트 사건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시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참된 정치인이었다면 감히 법이 심판한 블랙리스트 사건 주동자를 다시금 문화예술 부문으로 복귀시킬 수는 없었을 테다.

그리하여 나는 '씨네만세 878편'을 블랙리스트의 폐해를 다룬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사람이란 가까이 보고 겪지 않은 일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공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일거리를 주지 않는 일이 한 명의 예술가에게 어떤 고통을 줄 수 있는지, 또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일이 얼마나 저열한 것인지를 이야기를 통해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실존했던 작가 달튼 트럼보의 삶을 다룬 <트럼보>가 바로 그 영화다.

트럼보의 이름이 생소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로마의 휴일> <스파르타쿠스> <빠삐용>을 쓴 이라고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일 없는 이들 작품을 바로 그가 썼다.

그럼에도 <로마의 휴일> 각본가는 반세기가 넘도록 이언 맥켈란 헌터로 올라가 있었다. 트럼보의 동료작가인 그가 이름을 빌려준 것이다. 미국 정부와 그 압력을 받은 영화제작사가 트럼보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걸 허용치 않았기 때문이다. 1953년 작 영화의 크레디트는 2011년이 되어서야 원작자인 트럼보의 이름을 작품에 삽입했다. 복권되기까지 58년의 시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 트럼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공산주의자로 몰려 모든 걸 잃은 천재 작가

영화는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분)가 그와 같은 고난을 겪게 된 이유를 보여준다. 때는 1940년대 말, 매카시즘의 주동자로 역사에 기록된 못난 정치인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가 할리우드 작가들을 겨냥해 연일 거친 말을 쏟아낸다. 영화를 통해 민주적 가치를 오염시키고 국가전복을 도모하는 불온한 세력이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4년 만에 중국이 마오쩌둥의 공산세력에게 넘어간 사건은 세계에 일대 충격을 던졌다. 강성한 소비에트연방 또한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을 핵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남겨두지 않았다. 전후 그간 억눌러왔던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곪아서 터져나오며 파업 등 소요가 계속되고 있던 미국사회가 아닌가.

자본가와 그와 결탁한 정치인이며 언론인들은 노동조합의 배후로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를 지목해 온갖 괴담을 재생산했다. 적과 아군을 가르는 전쟁의 논리가 종전한 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당대 사회를 휩쓸었다. 보잘 것 없는 철학과 언변, 형편없는 도덕성을 지녔던 매카시가 일약 유명 정치인이 된 것은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한 덕분이었다.

처음엔 정부, 특히 국무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가지고 있고, 이중 57명이 국무부 직원이란 주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확인되지도 확인할 방법도 없는 일방적 주장일 뿐이었다. 그는 이내 전선을 넓히길 선택한다. 당대 미국사회에서 가장 화제성 높은 집단이며, 동시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성이 뚜렷한 할리우드가 타깃으로 지목됐다. 2차대전 기간 동안 소련에 대해 호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으니 그 얼마나 수월한 작업이었나. 전쟁 시절엔 소련이 연합군의 일원이었단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없는 듯했다.

이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극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유럽으로 쫓겨나다시피 망명한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찰리 채플린 또한 공산주의자란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영국으로 도피한다. 태생이 미국이어서 따로 떠날 길 없던 이들 중에서도 열 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작품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소위 '할리우드 텐'이라 불리는 블랙리스트다. 이중 단연 유망한 작가가, 또 그중 그를 이겨내고 걸작을 써낸 유일한 작가가 바로 트럼보다.

국회에 출두했다가 의회모독죄로 기소돼 10개월 감옥 생활까지 해야 했던 트럼보다. 출감 후 일을 구하려 하지만 어디서도 그를 써주지 않는다. 보아하니 유명 영화사가 죄다 쩔쩔매며 그를 피한다. 그를 쓰면 당장 수사며 조사가 들어올 수 있다고 두려워한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그런 때가 아닌가. 트럼보보다 훨씬 유명한 브레히트며 채플린마저 미국을 불명예스럽게 떠나야 했으니까.

▲ 트럼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그럼에도 포기 않은 위대한 작가

배운 게 도둑질이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꼭 이때 쓰는 것일 테다. 여기에 더해 트럼보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타고난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저를 써주지 않으니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갈 밖에. 그렇게 낮추고 낮추다 만난 것이 킹 형제, B급이란 말도 민망한 수준의 영화를 찍어내던 작은 영화제작사였다. 한때 잘 나갔던 트럼보는 그곳에서 헐값을 받으며 수많은 작품을 써낸다. 단 며칠에 장편 시나리오 하나씩을 완성해야 하는 강행군, 예술적 창작이라기엔 여러모로 민망한 단순하고 자극적인 B급 장르영화를 거듭해서 내놓는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도 창작자로 최소한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함께 해낼 방법이 오로지 그 뿐이었던 트럼보다. 한때 그와 작업하고자 애쓰던 이들 모두가 그를 외면할 밖에 없는 상황에서 트럼보의 고립과 시대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깊어질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는 믿기 힘든 기적적 승리담으로 끝을 맺는다. 위대한 작가인 트럼보는 온갖 어려움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작품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싸구려 각본을 쓰는 한편으로 틈날 때마다 조금씩 매만진 작품이 당대 히트작인 <브레이브 원>이 된다. 로버트 리치란 가명을 써야 했고 시상식에도 나타나지 못했다지만 그는 홀로 만족한다.

쓰기만 하면 아카데미 각본상에 오르는 솜씨는, 또 할리우드에서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익명의 작가가 있다는 소문은 알 만한 이들에겐 트럼보의 존재를 떠올리도록 한다. 그를 해고하라는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내는 트럼보, 또 그를 지키는 진짜 벗들이 영화를 보는 이를 감격하게 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로마의 휴일>을 쓰기에 이르는 것이다.

영화는 그와 같은 투쟁을 거듭하며 시간이 흘러 1960년이 된 시점으로 나아간다. 사내답기로 소문난 당대 최고의 명배우 커크 더글라스가 트럼보를 찾아온다. 그에게 로마시대 검투사의 반란 이야기를 다룬 <스파르타쿠스>를 써달라고 한다.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을 맡기로 한 작품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더글라스는 세상에 대고 말한다. 제 작품의 각본가가 바로 트럼보라고. 십 수 년 전 사라진 트럼보, 그러나 아는 이는 알고 있던 트럼보가 <스파르타쿠스>를 썼다고 말이다. 트럼보는 그렇게 제 이름을 되찾는다.

▲ 트럼보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우리가 보아야 할 건 트럼보 뿐이 아니다

<트럼보>는 무려 11개의 가짜 이름을 써야 했던 비운의 작가, 그러나 2번의 오스카를 받았던 천재작가의 이야기다. 정치인과 언론의 공세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명예는 물론 일거리까지 빼앗겼던 그가 무려 10여 년을 버텨내며 세상에 영원히 남을 걸작을 빚어내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이 영화로부터 트럼보 너머를 보아야만 한다. 그의 감동적 성취 뒤엔 함께 '할리우드 텐'에 지목된 아홉 명의 작가가 있었다. 미래가 기대되던 창창한 작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를 잃고 영화계를 떠나거나 삼류무대를 전전한다. 그렇게 제대로 된 작품을 쓸 기회조차 잃은 채 무너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고 만다. 트럼보와 달리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블랙리스트가 아니었다면, 그들에겐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는 끝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권력을 갖고 다른 이의 삶을 망치려 든 저열한 정치가와 못난 언론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뿐이다.

매카시즘 이후 70여년이 흐른 지금이다. 한국의 오늘은 <트럼보>가 그린 시대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계 제 단체가 11일 공동성명을 내고 "블랙리스트의 서막을 연 유인촌은 문체부 장관으로 돌아오고, 문체부 관료들을 이끌고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용호성은 문체부 차관이 되었고, 블랙리스트 실행에 가장 큰 책임이 있었던 조윤선이 서울시향의 이사가 되는 현 상황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고 지탄한 건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결정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여전히 야만적이고 저열하단 사실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왜 일어나 저항하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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