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성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 <사일런스 오브 리즌> 만든 쿠미아나 노바코바(Kumjana Novakova) 감독▲ 화제작 Silence of Reason의 포스터  이성의 침묵이라는 의미의 다큐영화 < Silence of Reason> 은 현재 국제무대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Kumjana Novakova
 
현재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무대에서 가장 큰 호평을 받고 있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꼽는다면 단연코 쿠미아나 노바코바(Kumjana Novakova) 감독의 신작 <사일런스 오브 리즌(Silence Of Reason)>(2023)이라는 데 평단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보스니아 전쟁(1992~1995년) 중 발생한 성노예제를 소재로 한 이 포렌식 비디오 에세이가 거의 모든 주요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및 북마케도니아 출신인 노바코바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사일런스 오브 리즌>은 세계 최대 다큐멘터리영화제인 네덜란드 IDFA에서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했고 북미 최대 다큐멘터리영화제인 캐나다 핫독에서도 최우수 중편 다큐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노바코바 감독은 보스니아 사라예보 영화제 및 류블랴나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도 인권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시네마 뒤 릴 영화제에서도 올해 국제그랑프리상을 수상했고 세르비아, 스페인, 크로아티아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면 노바코바 감독의 신작에 세계가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지난달 독일 비스바덴에서 열렸던 고이스트(goEast) 동유럽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단이 최우수 영화상인 골든 릴리상을 수여하며 발표한 성명서가 잘 설명해준다. 이들은 "1990년대 보스니아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대량 강간의 공포를 생존자들의 재판 증언에서 발췌한 회의록과 구술 녹음, 원본 영상을 통해 독창적이고 급진적인 형식으로 전달한 <이성의 침묵(Silence Of Reason)>에게 최우수 작품상 황금백합상을 수여한다. 모두의 침묵과 무관심 속에서 반복된 대량 범죄는 침묵과 금기를 깨고 전 세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된 모든 전쟁 범죄의 보편적인 기록이 되어 영원한 기억의 이정표가 되었다"라고 선정이유를 전했다. 노바코바 감독의 첫 장편 다큐 < Disturbed Earth >(2021)또한 보스니아 전쟁의 최대 비극이었던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을 소재로 다뤘고 아카데미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유고연방의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보스니아 전쟁은 전쟁범죄의 기록과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ICTY)을 통해 사법적 정의가 일정 부분 이뤄진 무력분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전시성 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미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성노예제의 피해자 수치는 미신고자가 많아 정확히 알기 어려운 현실이다. 사라예보에 기반한 전후리서치센터(PCRC)에 의하면 대략 2만에서 5만 명으로 추정된다. 주요 피해 지역은 이 영화의 물리적 공간인 포차를 비롯, 비세그라드, 그르바비차 등의 학교, 호텔, 스포츠센터 등등으로 전국에 걸친 것으로 알려진다.

'소녀들'을 뜻하는 보스니아 여성인권단체, 추레재단(Fondacija CURE)의 한 활동가에 의하면 세르비아계 주민이 대다수인 보스니아 스룹스카 공화국의 극우 정치인들은 올 10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속적으로 과거 전범 및 푸틴을 영웅시하고 전쟁 범죄 자체를 부인하며 공포감을 조성해 민족간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외에도 노암 촘스키, 타리크 알리를 비롯한 일부 극좌 성향 지식인들 및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페터 한트케도 세르비아계의 전쟁범죄를 최소화하는 역사수정주의 태도를 보여 국제적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노바코바 감독은 체코(Institute of Documentary Film), 불가리아(Balkan Documentary Center) 등에서 논픽션 영화 강의를 하기도 하고, 사라예보의 프라보 류드스키(Pravo ljudski)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래 내용은 필자가 고이스트영화제에서 4월 29일 만나 감독과 직접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내용과 5월 11일 이어진 서면 인터뷰를 종합요약한 것. 참고로 국내 영화제 초청여부는 아직 조율중이다. 

"우리의 절망과 무력감 전복할 수 있는 방법 찾아야"
  쿠미아나 노바코바 (Kumjana Novakova) 감독 ⓒ Almir zrno
 - <사일런스 오브 리즌>은 어떤 계기로 창작하게 되었나.
"발칸 탐사보도 네트워크(BIRN)로부터 단편 비디오 아트 프로젝트를 위한 예술 보조금을 받았다. 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 공간에서의 성폭력을 연구하며 작품을 개발중에 있었다. 연구에 더 집중하던 중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쿠나라츠 사건의 한 여성의 상세한 증언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갑자기 오로지 법적 논리로만 정리된 이 거대한 법의학 아카이브를 마주하면서 제 질문은 명확해졌다. 즉, 포차(Foča) 에서 자행된 강간 범죄에 대한 포렌식 아카이브를 영화라는 수단으로 어떻게 활성화하여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우리 자신의 집단 기억을 되찾고, 그것에 반해 증언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이었다."

- 엄밀히 말하면 보스니아 전쟁은 1990년대에 끝났다. 현재까지 보스니아에서 자행된 전쟁 범죄를 재조명하는 두 편의 장편 영화 < Disturbed Earth >(2021)와 < Silence of Reason >(2023)을 연출했다. 지금도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는 전쟁 당시 10대를 보낸 세대인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 경험에 큰 영향을 받았다. 저는 이 전쟁 이전과 이후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고 느낀다. 이런 특별한 입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주의 담론을 벗어나서 민족주의 서사에 대항하는 투쟁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새로운 세대는 전쟁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트라우마가 이들에게 전이되었기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한 채 전후 담론에 갇혀 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절망과 무력감을 전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담론을 전복하여 모든 것을 민족으로 정의하지 않는, 보다 열린 공적 공간을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민족이 문제가 아니다. 국수주의적 정치시스템에 힘을 실어주는 이런 종류의 제한적 담론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이다.

또한 개별적 영화작업은 우리 시대의 폭력과 부조리, 시스템, 우리가 속한 불의한 세상에 대항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싶다. 원칙적으로 두 영화는 동일한 지리적, 정치적 공간에서 자라났다. 아무쪼록 영화적 아이디어와 언어를 비롯해, 관련한 지식과 토론, 공론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신작 <사일런스 오브 리즌>은 영화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영화적 기념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영화가 보스니아 사회에서 성노예제를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지. 
"이 영화는 월드프리미어인 사라예보국제영화제 이후에 극장 배급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예술영화의 극장배급 시스템이 없다. 창의적인 극영화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방가르드 다큐멘터리를 위한 극장 배급 구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많은 곳에서 상영되기를 바란다. 현재 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있고, 심지어 영화제가 아닌 예술 공간이나 학계 행사에도 초청을 받고 있다. 물론 다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 사전조사할 때 많은 증언과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다. 영화에 포함할 이야기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개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포카 강간 수용소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을 때 저의 주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이 아카이브를 생생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즉 어떻게 이 끔찍한 경험을 영화의 형식으로 재현해서 국제법을 바꾸는 데 성공한 여성들의 힘과 용기가 우리 집단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지역 여성들과 전 세계 여성들의 집단적 기억말이다. 저에게는 개인의 이야기들보다는 집단적 용기가 훨씬 더 중요했다.

일반적으로 제 영화작업은 스토리 중심이 아니라 감정 중심이다. 모두 같은 공포를 겪었기 때문에 개별적 이야기들의 차이를 정의하는 방법론은 없었다. 제가 한 일은 법원 내지는 법적 논리를 따르는 대신, 아카이브의 주체인 여성을 따라 그들의 경험을 다시 아카이브하는 것이었다. 저는 증언한 여성 한 명 한 명에 대해 정리하는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재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헤이그 아카이브는, 영화의 형식과 마찬가지로, 생존 여성들의 아카이브가 되었다."

생존 여성들의 아카이브가 된 영화
 ▲ 영화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보스니아전쟁당시 포차 (Fo?a) 강간 캠프에서 자행된 전시 성폭력을 증언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Kumjana Novakova
 
- 이 영화는 90% 증언 텍스트, 변형된 사운드 및 포렌식 비주얼 아카이브의 이미지들로만 제작되었다고 들었다. 이러한 미학적 선택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아무것도 변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제가 아카이브에서 찾은 그대로다. 목소리는 법원에 의해 변형되었지만 우리는 바꾸지 않았다. 이 증인들은 성폭력과 강간을 저지른 대부분의 전범들이 자유의 몸인 상태에서 증언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철저한 보호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여성인권 활동가들의 압력으로 ICTY의 첫 검사가 법원 내에 젠더 부서를 구성했고, 그들은 최고 수준의 증인 보호를 요청했다.

이외에도 저에게 있어 모든 미학적 결정은 영화적 공간에서 비롯된다. 저는 표현/ 대변(representations)의 '규칙'에 따라 촬영하는 공간들을 존중한다. 저는 적어도 다큐멘터리 영화언어에서는 예술가를 천재라고 믿지 않는다. 겸손함을 가지고 주어진 공간에서 형식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제가 따르는 최우선의 미학적 결정이다. 매우 간단하지만 어려운 결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가장 분명해 보이는 결정이 가장 오래 걸리는 결정이 될 때도 있다." 
 
- 본인의 영화세계에서 핵심 키워드는 전쟁과 기억인 것 같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기억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제가 방문했을 때 치열한 역사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에 대한 추모관은 있었지만, 모스타르와 기타 지역에서는 다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추모비를 거의 보지 못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강간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보스니아의 비세그라드의 빌리나 블라스 호텔이 현재 관광객을 위한 스파 호텔로 홍보되고 있다.

3000명이 살해되고 200명의 강간 피해자 시신이 강물에 던져진 드리나강의 다리에는 아직도 추모비가 없고, 생후 이틀된 아기를 포함해 70명이 산 채로 불태워진 건물에도 추모비가 없다. 이 건물을 보전하기 위해 바키라 하세치치라는 한 여성이 싸우고 있다는 기사도 읽었다. 보스니아 북서부 세르비아인들이 다수인 프리예도르의 지방의회는 전쟁에서 살해 당한 102명의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비를 건립하려는 현지 엔지오 KVART 활동가들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원인을 단순히 '문화'의 문제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배우기도 하고, 배운 것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문화는 역동적인 개념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우리 지역에서도 문제는 민족주의적 정치 의제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정치세력이 지금도 여전히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상충되는 전쟁 서사를 사용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추모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대중의 담론은 여전히 적대적이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저는 매우 대담해져야 한다. 최악의 범죄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법적으로 기소되었고 매우 잘 기록된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며칠 전, 스레브레니차 대량학살에 대한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었는데 많은 주요 국가들이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전쟁을 기억하는 과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특히 많은 여성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감독님의 영화들은 가능한 한 생존자와 가장 가까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시 성폭력 생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 중 피해 사실을 밝히는 비율은 1%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들었다. 현지 여성인권 단체들은 이들을 위한 회복적 정의를 어떻게 추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참고로, 한국과 일본의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운동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금전적 배상, 분쟁 지역 생존 여성을 위한 국제적 연대에 초점을 맞춰왔다. 
"강간 범죄에 대해서는 (이런 구체적 요구와 운동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는 집단 강간 범죄가 군사 전략의 일부였으며, 전쟁 중에 행해진 다른 범죄와 같은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 공동체 내에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강력한 여성 연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세르비아의 '우먼 인 블랙 (Women in Black)'같은 단체는 전쟁 때부터 오랫동안 세르비아 남성들이 집단 강간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담하게 문제제기해오고 있다. 아마도 50년 정도 지나면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먼저 지역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한다. 여전히 지역 사회 내부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강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보스니아 정치 지도자들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 전쟁의 수단으로서의 전시 성폭력, 영화적 표현과 대응전략에 대한 토론회 4월 28일 독일 비스바덴에서 열렸던 동유럽 전문 영화제 고이스트 (GoEast)에서 쿠미아나 노바코바 감독이 패널로 참가해 발언중. 크로아티아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그린 다큐<Bigger Than Trauma>(2022)의 감독(베드라나 프리비체비치)과 프로듀서('미르타 푸흘로브스키)도 함께 참여했다. ⓒ 클레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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