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재밌지만, '재미만 있는' 영화를 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영화란 답답하고 변화 없는 일상에서 잠시잠깐 벗어나 신나는 꿈을 꾸는 순간"이라 말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와의 만남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을 게 분명하다.
주연 배우의 흠 잡을 것 연기에 전작에서도 이미 증명된 조지 밀러 감독의 스릴감 넘치는 연출, 여기에 박진감 가득한 자동차 추격신과 사실적인 전투신 등 할리우드 스타일의 다양한 흥미 유발 요소들까지.
최근 개봉해 흥행 가도를 거침없이 달려가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야기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포커스를 맞출 것 같으면 이 작품은 비판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일단 시원시원하고 재밌다. 음악과 미술 등 각종 예술 장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최고의 상업성을 갖춘 매력적인 상품으로 탄생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게다가 영화의 스토리는 '구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영화 홈페이지
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던 여자아이가 악당에게 엄마를 잃는다. 소녀의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된 사람은 폐허로 변한 세상에서 에너지의 독점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독특한 캐릭터의 악당. 소녀는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악당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에 성공한다.
2시간이 훌쩍 넘는 꽤 긴 영화를 단 160자로 요약할 수 있다는 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관람 시간 내내 고민할 게 하나도 없는 영화라는 뜻이 아닐까? '재밌는 상업영화=철학이 부재한 유치한 작품'이란 등식은 독선적이고 낡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 등식이 완전히 무용한 것일까?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 있다면, "영화란 한가한 인간들의 시간 때우기용 팝콘이 아닌 변혁의 수단"이라 말하는 관객도 분명 존재한다.
사회 진화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영화가 미치는 힘을 믿는 이들에겐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고 있는 시간이 지겹고 무료했을 터.
왜냐? 영화의 핵심이자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퓨리오사가 갖은 모욕과 고통을 견디며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엔 인간적 성찰과 복합적 고뇌가 빠져 있다.
그저 "기필코 내 엄마를 죽인 원수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20세기식 단순한 절치부심(切齒腐心)만으로 세련된 21세기 영화팬들에게 수긍의 고개 끄덕임을 얻어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간은 영화 속 퓨리오사처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행동의 저변에 그 행동을 추동하는 수십, 수백 가지의 이유를 가지는 게 보편의 인간. 복수심 하나만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없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악당 디멘투스의 캐릭터 역시 단선적이고 맹목적으로 느껴진다. '좋은 영화'의 기본이라 할 인물의 캐릭터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영화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결점이지 싶다.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영화 홈페이지
'문명'이라 부를만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땅에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극장에 들어서기 전엔 기대와는 달리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미래와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아주 조금은 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만으로 끝났다. 매번 속으면서도 할리우드의 달콤한 영화 홍보 방식에 또 속았다는 느낌. 해서, 영화를 본 후 입맛이 씁쓸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영화란 답답하고 변화 없는 일상에서 잠시잠깐 벗어나 신나는 꿈을 꾸는 순간"이라 말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와의 만남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을 게 분명하다.
주연 배우의 흠 잡을 것 연기에 전작에서도 이미 증명된 조지 밀러 감독의 스릴감 넘치는 연출, 여기에 박진감 가득한 자동차 추격신과 사실적인 전투신 등 할리우드 스타일의 다양한 흥미 유발 요소들까지.
최근 개봉해 흥행 가도를 거침없이 달려가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야기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포커스를 맞출 것 같으면 이 작품은 비판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일단 시원시원하고 재밌다. 음악과 미술 등 각종 예술 장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최고의 상업성을 갖춘 매력적인 상품으로 탄생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게다가 영화의 스토리는 '구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영화 홈페이지
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던 여자아이가 악당에게 엄마를 잃는다. 소녀의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된 사람은 폐허로 변한 세상에서 에너지의 독점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독특한 캐릭터의 악당. 소녀는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악당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에 성공한다.
2시간이 훌쩍 넘는 꽤 긴 영화를 단 160자로 요약할 수 있다는 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관람 시간 내내 고민할 게 하나도 없는 영화라는 뜻이 아닐까? '재밌는 상업영화=철학이 부재한 유치한 작품'이란 등식은 독선적이고 낡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 등식이 완전히 무용한 것일까?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 있다면, "영화란 한가한 인간들의 시간 때우기용 팝콘이 아닌 변혁의 수단"이라 말하는 관객도 분명 존재한다.
사회 진화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영화가 미치는 힘을 믿는 이들에겐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고 있는 시간이 지겹고 무료했을 터.
왜냐? 영화의 핵심이자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퓨리오사가 갖은 모욕과 고통을 견디며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엔 인간적 성찰과 복합적 고뇌가 빠져 있다.
그저 "기필코 내 엄마를 죽인 원수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20세기식 단순한 절치부심(切齒腐心)만으로 세련된 21세기 영화팬들에게 수긍의 고개 끄덕임을 얻어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간은 영화 속 퓨리오사처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행동의 저변에 그 행동을 추동하는 수십, 수백 가지의 이유를 가지는 게 보편의 인간. 복수심 하나만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없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악당 디멘투스의 캐릭터 역시 단선적이고 맹목적으로 느껴진다. '좋은 영화'의 기본이라 할 인물의 캐릭터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영화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결점이지 싶다.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한 장면.ⓒ 영화 홈페이지
'문명'이라 부를만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땅에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극장에 들어서기 전엔 기대와는 달리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미래와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아주 조금은 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만으로 끝났다. 매번 속으면서도 할리우드의 달콤한 영화 홍보 방식에 또 속았다는 느낌. 해서, 영화를 본 후 입맛이 씁쓸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