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솔로 앨범 《관능소설》 발매한 김윤아 ③ 생을 살아야 음악이 나온다

[기획] 솔로 앨범 《관능소설》 발매한 김윤아 ③ 생을 살아야 음악이 나온다



- 꽤 오랫동안 스스로를 공작부인(工作婦人), 무언가를 만드는 여성이라 지칭했다. SNS 프로필에도 ‘궁극의 만들기 여자’라는 소개 문구를 오래 기입해두었는데 근래 ‘싱어송라이터’로 바꾸었다.

= 사실 계속 두고 싶었다. 그런데 SNS가 아티스트의 주요 PR 수단으로 자리하는 시류가 생긴 이후 ‘궁극의 만들기 여자’를 써놓은 게… 좀 아마추어 같았다. (웃음) 이젠 나도 멋있는 걸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 히트곡인 <야상곡>을 포함해 이번 앨범의 <종언> <체취>와 같은 한자어 제목의 곡들의 표기 방식이 재밌다. 언급한 곡들은 포털사이트엔 한글로 표기되지만, 앨범 부클릿엔 한자로 제목이 쓰여 있다. 한자 표기의 즐거움이 있다면.

= 우선 자우림(紫雨林)도 한자고 내 이름도 한자다. 나는 윤리 윤(倫)에 나 아(我)를 쓴다. ‘윤’자엔 차례라는 뜻도 있다. 결국 내 이름은 ‘My turn’, 그러니까 내 차례란 뜻이다. (웃음) 한자는 표의문자다 보니 그 자체로 은유를 포함한다. 그래서 아름답다. 뜻이 숨어 있으니 말이다. 한자 교육을 공교육에서 학습한 거의 마지막 세대라 한자라 친한 점도 있다. 어릴 땐 신문에도 국한문혼용이 많았고. 최근 옛날 자료를 꺼내 읽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는데 어린 세대의 출연진에 비해 내가 자료에 쓰인 한자를 다 읽을 수 있어 새삼 놀랐다.

- 많은 음악을 듣고 영화와 책을 접하며 귀납적으로 알게 된 김윤아의 취향이 있나. 《Shadow of Your Smile》에서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1985)에 매료된 경험을 밝힌 적 있다.

= 초등학생 때 <주말의 명화>에서 <브라질>을 처음 봤는데 브라운관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확실히 나는 컬트 마니아다. 평탄하게 아름다운 영화들엔 어릴 적부터 흥미가 없었다. 대학생 때도 나의 인생 작품인 TV시리즈 <트윈 픽스>에 단박에 사로잡혔다. 오히려 오래 씹은 껌 같은 <타이타닉>류의 영화엔 관심이 가질 않았다. 물론 아름다운 배우에겐 몹시 약해서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배우가 나오면 오래 씹은 껌 같은 영화라 해도 볼 수 있다. 가령 에바 그린이 계속 스크린에 등장한다면 무조건 보러 갈 것이다. (웃음) 또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공존하는 작품을 ‘납득’한다. 작품의 어두운 측면이 밝은 측면의 밸런스를 통제하거나 정말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이 취향에 부합한다. 감상은 결국 직관이니까 딱 보았을 때 미치도록 아름다운 자극에 끌린다. <더 셀>(2000)이나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 등 타셈 싱의 초기 영화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끝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극은 아름답다.

- 앞서 언급한 <사랑의 형태> 공연을 포함해 김윤아의 콘서트엔 다양한 텍스트들이 음악과 교직한다.

= 음악의 기승전결을 고려해 어울리는 곡들을 묶어 세트리스트를 짠다. 전체 흐름에서 멘트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둔 후 이번 콘서트의 주제와 내러티브를 정리한다. 예를 들어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했던 최근 콘서트에선, <봄이 오면>과 <강>을 부르기 전 4월에 벌어진 사건을 추모할 꼭지가 필요했다. 잔인한 달과 황량한 바다에 관한 대목을 생각할 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즉각적으로 떠올라 인용했다. 곡에 어울리는 텍스트를 일부러 공부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연상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즐겁다.



-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스스로 만든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일에 비유했다.

= 가장 즐거운 미로는 곡을 만드는 과정이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이 가장 즐겁다. 가장 괴로운 미로도 그 안에 있다. 곡을 쓸 때 느끼는 괴로움은 절망에 가까운 괴로움이다. 하지만 연애의 일부에 쓸쓸함이 존재하듯, 절망에 가까운 괴로움도 즐거움의 일부다. 그 절망감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었다 싶다. 분명 그 속에 변태 같은 즐거움이 있고. (웃음) 물리적 괴로움도 있다. 믹싱과 마스터링의 미로는 굉장한 인내와 많은 시간을 요한다. 같은 곡을 수백번 들을 때 나를 포함해 엔지니어, 매니저들도 구석에서 온종일 괴로운 작업에 동참한다. 무엇보다 후반 과정은 귀를 예민하게 써야 하는 작업이라 녹록지 않다.

- 하기야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과 노래를 잘하기 위해 타고나야 하는 건 좋은 목소리가 아닌 좋은 귀라고 하더라.

= 100% 동의한다.

-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 체력이다. 그다음은 향상심이다. 전에 내가 냈던 소리를 뛰어넘고, 전작보다 낫고 좋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다. 언급한 대로 음악을 잘하면서 노래를 잘하기 위해 반드시 좋은 귀가 있어야 한다. 이때 개입하는 요소가 톤이다. 테크닉이 훌륭한데 매력이 없는 보컬리스트가 가지지 못한 게 톤이다.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소리, 사람들을 미혹할 마법의 가루는 톤에서 나온다. 나도 톤을 타고난 보컬리스트가 아니다. 말할 때를 포함해 딱딱하고 어색하며 다소 무서운 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걸 노래할 때 듣기 좋은 소리로 만들기 위해 계속 벼리고 있다. 경험치로 겨우 연마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내 목소리를 좋아하게 된 것도 자우림 10집 이후니 말이다. 앞으로 더 향상하고 싶다.

- 유튜브에 자우림과 김윤아의 라이브 영상을 조회하면 댓글에 하나같이 곡에 대한 평가보다 이 곡을 들었을 당시 자기 사연이 주를 이룬다. 최근 라이브 영상의 가장 추천수가 높은 댓글이 “김윤아가 살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였다.

= 거창한 표현으로 들릴지 몰라도 나에겐 기적이다.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예로 들면 이 곡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에 관한 곡이다. 그런데 듣는 이들도 각자의 소중한 순간,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떠올리는 것 아닌가. 이거야말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 기적이다. 일상에서 경험치를 착실히 쌓으며 평범한 사람으로 잘 살아나가고 싶다. 생을 살아야 음악이 나온다.

- 유독 음악가들이 고통과 고뇌로 점철된 삶 속에서 음악을 창조한다고 쉽게 단정하는 것 같다. 무심코 살아가는 양지 바른 일상에서 예술을 잉태할 수도 있는데.

=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을 한다고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부분을 침범하는 행위가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으로 살려면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건강한 시민으로 내 삶을 사는 와중에 음악을 계속 만드는 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종 듣는 비난 중 하나가 “김윤아는 다 가졌으면서 저런 깜깜한 이야기를 노래하나.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는 말이다. 그런데 음악은 일기가 아니지 않나. 나는 좋은 인간으로 건전한 삶을 살고자 한다. 좋은 인간이 되어야 불행한 노래를 쓰든 행복한 노래를 쓰든 가치가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음악은 외부적 요인이 아티스트의 등을 떠밀어 만드는 음악이 아니다. 스스로의 정신을 깎아서 만드는 게 음악이다.



<언페이스풀>

“피 이야기를 또 해야겠네. 꼭 남의 피가 흘러야 하고,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한다. 뇌 속이기 프로젝트는 <화양연화> <색, 계> <헤어질 결심>으로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엄청난 영화를 몰아치니 종래엔 <헤어질 결심>도 순한 맛이 되더라. (웃음) 다이앤 레인이 입을 살짝 벌리고 머리가 흘러내릴 때의 클로즈업, 그때 스치는 초조함과 죄의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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