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씨네만세 877] <서울극장>한국 영화의 상징이었던 옛 극장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대한극장이 지난 9월, 66년간의 영업을 마치고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끝낸 건 또 한 번의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었다. 이제 그처럼 역사 깊은 극장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오랜 추억이 뭉텅이로 소실되는 허함을 어떻게든 견딜 일만 남았다.
공간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인상을 남긴다. 추억이 그대로 새겨진 장소에 서는 것만으로도 지난 시간과 감상들이 스치듯 떠오른다. 공간의 소실은 그래서 기억의 소실이기도 하다. 기억이란 그저 활자로 쭉 적어내릴 수 있는 이성의 영역만은 아닌 탓이다. 냄새와 분위기, 인상과 공간감 같은 것을 그를 매개해 소환하는 장소의 소실 뒤에도 꼭 같이 기억할 수 있다 믿는 것은 오만함이 아닌가.
대한극장이 문을 닫기 전에도 여러 극장이 거듭 영업을 종료하였다. 대한극장과 자매극장이라 해도 좋을 서울극장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8월, 서울극장은 끝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선언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개봉영화 상당수 시사회가 이곳에서 열렸을 만큼 상징적 극장이었던 과거가 무색한 이별이었다. 폐관 직전 한 달 간의 무료상영회가 이곳의 끝을 그나마 낭만적으로 장식했을까.
▲ 서울극장 스틸컷ⓒ 영화사 진진
폐관한 서울극장, 그 정취를 담다
누가 뭐래도 반세기 넘는 시간동안 한국영화의 한 축으로 기능했던 장소다. 한국영화가 서울극장과의 이별에 나름의 인사를 건네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일일 테다. 다행히 그와 같은 영화가 없지 않아서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김태양 감독의 2022년 작 단편영화 <서울극장>이 바로 그 작품으로, 영업을 종료하는 극장과 극장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 가운데 담아 오래도록 남기는 것이다.
이야기는 실제 서울극장이 곧 문을 닫는다 발표한 뒤의 어느 날을 그린다. 서울극장은 폐업을 앞두고 오래 전 서울의 모습이 담긴 옛 작품을 상영한다. 상영 뒤엔 관객과의 대화와 영화에 대한 해설이 진행된다. 모더레이터로 일하는 여자가 극장 앞 테이블에 앉아서는 관객과의 대화를 자연스레 이끈다.
행사가 끝난 뒤 극장 사람들과 모더레이터의 회식자리가 있다. 이제 영화관은 영업을 종료하고, 그녀 같은 모더레이터와 이 극장의 인연 또한 마지막일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간단히 술 몇 잔을 나누던 그녀가 선약이 있다며 자리를 일어선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면서 어서 가겠다고 말하는 그녀, 그 뒤를 한 남자가 따라온다.
따라온 이는 서울극장 팀장으로 일하는 사내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멈춰 세운 그가 어찌저찌 대화를 이어나간다. 딱히 용건은 없지만 그저 보내기는 싫은 마음이 보는 이에게도 그대로 느껴진다. 눈치 빠른 여자가 왜 모를까. 그로부터 이런저런 대화를, 매끄럽지만도 않고 어색하지만도 않은 대화를 나누며 둘은 나란히 걷는다. 종로 버스정류장까지, 다시 저기 지하철역까지,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간다. 방금 전 상영된 영화 속 옛 서울 거리가 오늘 이들이 함께 걷는 거리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종로와 청계천, 그 공간들은 백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탈바꿈하였으나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 아닌가.
▲ 서울극장 스틸컷ⓒ 영화사 진진
떠난 것과 남은 것, 그 교차와 순환에 대하여
<서울극장>은 떠나간 것과 남아 있는 것,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그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29분의 짧은 단편은 여자를 향해 도전하는 남자의 용기를 보이고, 또 은근하게 에둘러 그를 거절하는 여자의 모습 또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그대로 끝날 것인지, 또 어떠한 아쉬움으로부터 다시 이어질 것인지를 관객은 쉬이 단정할 수 없다.
사람과 관계의 역사와 도시와 건물의 역사처럼 극장과 영화의 역사도 그와 같아서 끊어진 듯하면 이어지고, 이어졌다 해도 마침내는 끊어지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 이 영화는 극장이었고 이제는 역사가 된 서울극장과의 마지막 순간이 그저 영영 아무렇지 않게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건 그대로 어느 떠나감에 대한 위로이고 아쉬움이며 이별의 헌사가 된다. 영화 속 대사처럼 '예의 바르게' 전하는 작별인사가 된다.
가만히 보자면 감독 김태양은 멋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가 함께 걷는 서울 도심의 긴 거리가 그렇고, 그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 뒤의 시선이 또한 그러하다. 여자를 향해 건네는 남자의 도전적 발언들과 또 그에게 쉬이 자리를 허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물리치지도 안는 여자의 태도 또한 그러하다. 그들 사이의 대화가 다소 밀도가 없고 빙빙 도는 듯한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짤막한 단편, 간단한 서사 가운데선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 서울극장 스틸컷ⓒ 영화사 진진
드문 매력 보유한 단편, 개봉기회 잡았다
그 대신 영화가 내보이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헌사가 그저 사라짐과 끝남에 대한 것으로 남지 않는단 점이 매력적이다. 집착이며 후회가 아닌 아쉬움, 잘 익은 그리움이 되어 언제고 새 일어남의 거름이 될 감상으로 녹아든 낭만적 영화가 되었다. 이뤄지지 못한, 채 시작도 하지 못한 관계로부터 끝남의 아쉬움을 생각하게 하는 그 시각이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는 드문 자질을 엿보게 한다. 그건 그대로 좋은 일이 아닌가.
주연한 배우 이명하와 박봉준은 또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나이가 찼으나 여전히 청춘의 한 가운데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세대만이 가진 에너지를, 그 관계 맺음에의 욕망과 지겨움을 자연스레 내비친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기 가운데 많은 대사를 어렵지 않게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참을 걸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며 그 적절하고 과하지 않은 표정 또한 마음에 든다.
<서울극장>이 한국영화 가운데 드문 매력을 지닌 예의 바르고 낭만적이며 건실한 작품인 건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영화는 김태양 감독의 전작인 <달팽이>, 또 그의 신작 한 작품과 함께 묶여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작품명은 <미망>, 모두 세 편의 단편이 묶인 트릴로지 형식이지만 그 사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보다 선명해졌다 전한다. 배우 이명하가 세 편 모두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는 가운데, 홍상수 감독의 근작들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하성국 또한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한국영화가 가진 흔치 않은 매력과 마주하고, 또 사라진 서울극장의 정취를 느끼고픈 이라면 <미망>, 또 그 안에 담긴 <서울극장>을 찾아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간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인상을 남긴다. 추억이 그대로 새겨진 장소에 서는 것만으로도 지난 시간과 감상들이 스치듯 떠오른다. 공간의 소실은 그래서 기억의 소실이기도 하다. 기억이란 그저 활자로 쭉 적어내릴 수 있는 이성의 영역만은 아닌 탓이다. 냄새와 분위기, 인상과 공간감 같은 것을 그를 매개해 소환하는 장소의 소실 뒤에도 꼭 같이 기억할 수 있다 믿는 것은 오만함이 아닌가.
대한극장이 문을 닫기 전에도 여러 극장이 거듭 영업을 종료하였다. 대한극장과 자매극장이라 해도 좋을 서울극장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8월, 서울극장은 끝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선언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개봉영화 상당수 시사회가 이곳에서 열렸을 만큼 상징적 극장이었던 과거가 무색한 이별이었다. 폐관 직전 한 달 간의 무료상영회가 이곳의 끝을 그나마 낭만적으로 장식했을까.
▲ 서울극장 스틸컷ⓒ 영화사 진진
폐관한 서울극장, 그 정취를 담다
누가 뭐래도 반세기 넘는 시간동안 한국영화의 한 축으로 기능했던 장소다. 한국영화가 서울극장과의 이별에 나름의 인사를 건네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일일 테다. 다행히 그와 같은 영화가 없지 않아서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김태양 감독의 2022년 작 단편영화 <서울극장>이 바로 그 작품으로, 영업을 종료하는 극장과 극장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 가운데 담아 오래도록 남기는 것이다.
이야기는 실제 서울극장이 곧 문을 닫는다 발표한 뒤의 어느 날을 그린다. 서울극장은 폐업을 앞두고 오래 전 서울의 모습이 담긴 옛 작품을 상영한다. 상영 뒤엔 관객과의 대화와 영화에 대한 해설이 진행된다. 모더레이터로 일하는 여자가 극장 앞 테이블에 앉아서는 관객과의 대화를 자연스레 이끈다.
행사가 끝난 뒤 극장 사람들과 모더레이터의 회식자리가 있다. 이제 영화관은 영업을 종료하고, 그녀 같은 모더레이터와 이 극장의 인연 또한 마지막일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간단히 술 몇 잔을 나누던 그녀가 선약이 있다며 자리를 일어선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면서 어서 가겠다고 말하는 그녀, 그 뒤를 한 남자가 따라온다.
따라온 이는 서울극장 팀장으로 일하는 사내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멈춰 세운 그가 어찌저찌 대화를 이어나간다. 딱히 용건은 없지만 그저 보내기는 싫은 마음이 보는 이에게도 그대로 느껴진다. 눈치 빠른 여자가 왜 모를까. 그로부터 이런저런 대화를, 매끄럽지만도 않고 어색하지만도 않은 대화를 나누며 둘은 나란히 걷는다. 종로 버스정류장까지, 다시 저기 지하철역까지,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간다. 방금 전 상영된 영화 속 옛 서울 거리가 오늘 이들이 함께 걷는 거리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종로와 청계천, 그 공간들은 백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탈바꿈하였으나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 아닌가.
▲ 서울극장 스틸컷ⓒ 영화사 진진
떠난 것과 남은 것, 그 교차와 순환에 대하여
<서울극장>은 떠나간 것과 남아 있는 것,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그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29분의 짧은 단편은 여자를 향해 도전하는 남자의 용기를 보이고, 또 은근하게 에둘러 그를 거절하는 여자의 모습 또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그대로 끝날 것인지, 또 어떠한 아쉬움으로부터 다시 이어질 것인지를 관객은 쉬이 단정할 수 없다.
사람과 관계의 역사와 도시와 건물의 역사처럼 극장과 영화의 역사도 그와 같아서 끊어진 듯하면 이어지고, 이어졌다 해도 마침내는 끊어지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 이 영화는 극장이었고 이제는 역사가 된 서울극장과의 마지막 순간이 그저 영영 아무렇지 않게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건 그대로 어느 떠나감에 대한 위로이고 아쉬움이며 이별의 헌사가 된다. 영화 속 대사처럼 '예의 바르게' 전하는 작별인사가 된다.
가만히 보자면 감독 김태양은 멋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가 함께 걷는 서울 도심의 긴 거리가 그렇고, 그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 뒤의 시선이 또한 그러하다. 여자를 향해 건네는 남자의 도전적 발언들과 또 그에게 쉬이 자리를 허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물리치지도 안는 여자의 태도 또한 그러하다. 그들 사이의 대화가 다소 밀도가 없고 빙빙 도는 듯한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짤막한 단편, 간단한 서사 가운데선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 서울극장 스틸컷ⓒ 영화사 진진
드문 매력 보유한 단편, 개봉기회 잡았다
그 대신 영화가 내보이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헌사가 그저 사라짐과 끝남에 대한 것으로 남지 않는단 점이 매력적이다. 집착이며 후회가 아닌 아쉬움, 잘 익은 그리움이 되어 언제고 새 일어남의 거름이 될 감상으로 녹아든 낭만적 영화가 되었다. 이뤄지지 못한, 채 시작도 하지 못한 관계로부터 끝남의 아쉬움을 생각하게 하는 그 시각이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는 드문 자질을 엿보게 한다. 그건 그대로 좋은 일이 아닌가.
주연한 배우 이명하와 박봉준은 또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나이가 찼으나 여전히 청춘의 한 가운데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세대만이 가진 에너지를, 그 관계 맺음에의 욕망과 지겨움을 자연스레 내비친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기 가운데 많은 대사를 어렵지 않게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참을 걸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며 그 적절하고 과하지 않은 표정 또한 마음에 든다.
<서울극장>이 한국영화 가운데 드문 매력을 지닌 예의 바르고 낭만적이며 건실한 작품인 건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영화는 김태양 감독의 전작인 <달팽이>, 또 그의 신작 한 작품과 함께 묶여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작품명은 <미망>, 모두 세 편의 단편이 묶인 트릴로지 형식이지만 그 사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보다 선명해졌다 전한다. 배우 이명하가 세 편 모두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는 가운데, 홍상수 감독의 근작들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하성국 또한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한국영화가 가진 흔치 않은 매력과 마주하고, 또 사라진 서울극장의 정취를 느끼고픈 이라면 <미망>, 또 그 안에 담긴 <서울극장>을 찾아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